다사다난했던 2025년 을사년(乙巳年)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올해 패션섬유산업은 글로벌 소비시장 위축과 공급과잉, 내수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친 관세 정책은 글로벌 공급망을 크게 흔들어 놓으면서 국내 업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런 가운데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으로 가두매장이 활기를 띄었고, 국내에서 성장이 한계에 도달한 백화점이 본격적인 해외 진출에 나서기도 했으며, 붕괴 위기를 맞았던 명동 상권은 K-컬처 인기로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도심 속 러닝 열풍이 올해도 이어지면서 러닝화 시장이 급성장 했고, 중고 제품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바뀌면서 중고 패션시장이 급부상했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시장은 상당 수 업체가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가운데 무신사의 독주가 이어졌고, 업계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지난 3월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 파문이 일었다. 올해 패션섬유업계에 벌어진 주요 이슈를 살펴봤다.
1. 트럼프 관세 정책에 OEM 업계 비상
지난 2월 열린 섬산련이 주최한 ‘트럼프 2기 대응, 섬유패션 리셋(Reset) 주간 행사’ 포스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국내 패션섬유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패션섬유산업은 글로벌 공급망에 크게 의존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관세 변화는 소재 조달 비용, 소비자 가격, 브랜드 경쟁력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영원무역, 한세실업, 세아상역 등 국내 의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이들 기업은 베트남,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에 생산 공장이 있고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데, 이들 나라에 고율의 관세가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무역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OEM 업계는 생산 구조의 유연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남미, 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는 한편 수직계열화와 자동화 설비 확대, 고부가가치 제품 수주 확대, ESG 실천 등의 대응 전략을 펼친다는 전략이다.
2. 소비쿠폰 죽어가던 패션 경기 살렸다
패션그룹형지 ‘샤트렌’ 나주점 점주가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처임을 알리고 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죽어가던 패션 경기를 살렸다. 정부는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조치로 지난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전 국민을 대상으로 1인당 15~55만 원씩 소비쿠폰을 지급했다. 특히, 이번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원, 내수 활성화를 목표로 연매출 30억 원 이하의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합리적 가격의 의류와 잡화를 선보이는 가두 매장이 혜택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패션그룹형지는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시행에 발맞춰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전개한 결과 주요 브랜드 매출이 최대 35% 뛰는 등 뚜렷한 실적 개선을 보이기도 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직후 6주 동안 소비쿠폰 사용가능 업종의 매출이 지급 직전 2주 대비 평균 4.93% 증가한 반면 사용불가 업종에서는 쿠폰 지급 전후로 유의미한 매출 변화가 없었다. 업종별로는 의류·잡화·미용(12.1%), 음식점·식·음료(6.4%)의 매출 진작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3. 백화점도 해외로… 현대百, 日에 매장 오픈
지난해 11월 현대백화점이 일본 도쿄에 위치한 쇼핑몰 파르코 시부야점에서 진행한 ‘더현대 글로벌’ 팝업스토어 모습
올해는 국내에서 성장이 한계에 도달한 백화점이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는 한 해였다. K-패션과 K-뷰티 등이 인기를 끌면서 국내 브랜드들과 협업을 통해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특히, 현대백화점의 행보가 주목을 받았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9월 일본 도쿄에 위치한 쇼핑몰 파르코 시부야점 4층에 더현대 글로벌 리테일숍 운영을 시작했다. 국내 백화점이 일본에서 팝업이 아닌 정규 매장을 오픈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백화점은 내년 상반기에는 도쿄의 패션 중심지인 오모테산도 쇼핑 거리에 대규모 플래그십 스토어를 추가로 오픈하는 등 향후 5년간 일본에서 총 5개 리테일숍을 개점할 계획이다. 현대백화점은 이어 지난 10월 1일부터 오는 12월 25일까지 3개월 간 대만 신광미츠코시 백화점에서 K브랜드를 소개하는 ‘더현대 글로벌 팝업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도 ‘하이퍼그라운드’를 통해 국내 패션·뷰티 브랜드들과 함께 해외 진출에 나서고 있으며, 롯데백화점은 직접 출점 방식으로 현재 베트남 3곳, 인도네시아 1곳에서 4개의 거점 매장을 운영 중이다.
4. 패션 1번지 명동 ‘화려한 부활’
미스토홀딩스가 지난 4월 오픈한 ‘휠라 1911 명동점’
패션 1번지 명동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한때 공실률이 50%대에 달하며 붕괴 위기를 맞았던 명동 상권은 K-컬쳐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올 들어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이에 따라 명동의 공실률은 올해 2분기 기준 7%대에 진입, 2018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패션 업체의 명동 진출도 잇따르고 있다. F&F의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은 지난 3월 명동에 신규 매장을 열었다. 2층 규모로 꾸며진 매장은 자연을 모티브로 한 인테리어와 탐험형 체험 공간 콘셉트를 내세우며 브랜드 경험을 강화하고 있다. 미스토홀딩스의 ‘휠라’도 지난 4월 명동에 헤리티지 콘셉트 스토어 ‘휠라 1911 명동점’을 오픈했다. 레시피그룹이 전개하는 컨템포러리 브랜드 ‘세터’ 명동점은 지난 7월 10일 오픈 이후 지속적인 매출 신장세를 이룬 가운데 8월 기준 월 매출이 10억 원을 돌파했다. 더네이쳐홀딩스의 ‘마크곤잘레스’도 지난 7월 명동점을 오픈했다.
5. 러닝 열풍 속 운동화 시장 급성장
‘르꼬끄 스포르티브’ 러닝화 ‘비바폼 맥스 쉴드’
도심 속 러닝 열풍이 올해도 이어지며 패션업계 지형을 바꾸었다. 출퇴근 시간 빌딩숲을 달리는 직장인 러너부터 주말 한강을 누비는 러닝 크루까지, 러닝이 단순한 운동을 넘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기존 러닝 전문 브랜드의 영역이었던 퍼포먼스 웨어 시장에 아웃도어, 애슬레저, SPA 브랜드까지 대거 진출하며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최근 국내 러닝 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한 가운데 올해 러닝화 시장은 1조 원, 운동화 시장은 4조 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러너들의 니즈가 갈수록 다양해지면서 패션업계는 과거 단순히 기능성에만 집중했던 러닝 웨어와 달리, 퍼포먼스 향상과 스타일링을 동시에 충족하는 ‘러닝코어(Running+Core)’ 제품 개발에 주력했다. 이러한 고기능성 의류는 신축성과 통기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일상룩으로도 손색없기 때문에 고물가 속 다목적 제품을 선호하는 러너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6. 온라인 플랫폼 부침 속 무신사 독주
지난 6월 10~11일 열린 ‘무신사 글로벌 파트너스 데이’ 행사에서 키노트 발표를 하고 있는 박준모 무신사 대표
온라인 패션 플랫폼 시장은 상당 수 업체가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가운데 무신사의 독주가 이어졌다. 동대문 기반 패션 플랫폼 ‘브랜디’를 운영하고 있는 뉴넥스는 지난 9월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뉴넥스는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뉴넥스의 기업회생 신청은 재정건정성 악화로 자본잠식에 빠졌기 때문으로 에이블리, 지그재그 등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절대강자인 무신사는 지난해 연결재무제표 기준 연간 거래액 4.5조 원, 매출 1조2,427억 원, 영업이익 1,028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거래액이 5조 원을 넘을 전망이다. 또한, 지난 6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2025 무신사 글로벌 파트너스 데이’를 열고, 오는 2030년까지 글로벌 기준 연간 거래액 3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7. ‘리커머스’ 중고 패션시장 급부상
F&F가 최근 선보인 중고 거래 플랫폼 ‘디스커버리 리마켓’
중고 제품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바뀌면서 중고 패션시장이 급부상했다. 특히, 패스트 패션이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야기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자원 순환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고 패션 플랫폼과 같은 ‘순환유통’ 비즈니스 모델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무신사는 패션 중고상품을 거래할 수 있는 리커머스 서비스 ‘무신사 유즈드(MUSINSA USED)’를 지난 8월 선보였다. F&F의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도 최근 중고 거래 플랫폼 ‘디스커버리 리마켓’을 오픈했다. 디스커버리 리마켓은 자연 순환형 거래 플랫폼으로 소비자가 직접 참여해 제품의 가치를 다시 순환시키는 ‘지속 가능한 소비 경험’을 제안한다. LF도 자사 브랜드 중고 거래를 활성화하고 패션 자원 순환을 실현하기 위해 ‘엘리마켓’을 론칭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은 지난 2022년 국내 패션기업 최초로 중고 거래 서비스인 ‘오엘오 릴레이 마켓’을 론칭, 운영 중이다.
8. 홈플러스 법정관리 사태 ‘일파만파’
업계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지난 3월 신용등급 하락을 이유로 기업회생(법정관리) 절차를 신청, 파문이 일었다. 기업회생 절차 신청 과정에서 홈플러스의 최대 주주인 MBK파트너스는 신용등급 강등 직전인 2월 말 수백 억 원 규모의 기초유동화단기채권(ABSTB)을 발행하는 등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도적적 해이)에 빠지면서 충격을 줬다.
법정관리 이후 많은 점포가 폐쇄되면서 홈플러스에 입점한 패션 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홈플러스는 현재 매각 절차를 밟고 있지만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한 기업 2곳 모두 재무 구조가 취약해 인수 여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새로운 인수 희망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홈플러스가 매각이 아닌 청산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홈플러스 사태는 MBK파트너스의 방만한 경영과 함께 온라인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며 오프라인 유통의 입지가 줄어드는 가운데 나타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9. 기후변화로 상품기획 확 달라졌다
인동에프앤 ‘시스티나’ FW 컬렉션
패션 업체들이 상품기획과 영업의 최대 복병으로 기후 변화를 꼽고 이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F/W 시즌 상품기획의 경우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강추위가 늦게 찾아올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간절기부터 한겨울까지 촘촘한 상품기획을 준비했다. 일례로 LF의 ‘헤지스’는 더워지는 F/W 시즌에 대응해 새로운 소재감과 중량감의 스타일을 확대했다. 인동에프엔의 ‘시스티나’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레더, 스웨이드, 코듀로이, 부클 등의 소재를 활용하며 상품 다양화를 강화했다.
업계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패션업계인 만큼, 점점 늦게 찾아오는 겨울 강추위에 최대 성수기로 꼽히는 다운 자켓 판매 시기도 함께 늦춰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큰 일교차가 벌어지는 가을 날씨에 한층 더 가벼운 착용감을 느낄 수 있는 간절기 제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어 다양한 상황에 따라 변주를 줘 입을 수 있는 경량 다운 스타일에 대한 수요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0. ‘대구 섬유패션산업 르네상스 액션플랜’ 추진
대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대구 섬유패션산업 르네상스를 통한 대구 섬유패션 테크노밸리’ 구축(안)
대구광역시가 지난 3월 지역 전통 주력산업인 섬유패션산업의 침체를 극복하고 5+T(Textile) 미래신산업으로의 대전환을 통한 재도약을 위해 총 3천억 원 규모의 대구 섬유패션산업 르네상스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번 계획은 글로벌 트렌드와 정부 정책기조를 반영함과 동시에 지역이 보유한 섬유 기반을 활용하고 대구혁신 100+1 산업구조 대개조의 기회를 살리는 등 대구 섬유패션산업이 직면한 대내외 위기요인을 기회로 바꾸어 나가는 데에 방향성을 두었다.
2035년까지 총사업비 3천억 원 규모로 ‘첨단 섬유패션테크산업의 글로벌 중심지로 도약’이라는 비전 아래 △미래신산업 연계 Tech융합소재 육성(1,000억 원) △순환경제·디지털 전환을 통한 생산 고도화(1,100억 원) △파워풀 대구 글로벌 브랜드 구축 및 비즈니스 활성화(400억 원), △융복합형 핵심 인재양성(500억 원) 등 4대 전략을 중점 추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