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이제는 ‘컨텍스트(context)’에 집중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이 가야할 길③
박우혁 기자  패션 2020.03.2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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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규 건국대 화학공학부 교수/상허교양대학 학장

4차 산업혁명은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을 재도약하게 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이다. 그동안 세계 섬유패션 산업의 조력자(supporter)로 자리매김하면서 성장했던 우리로서는 더 이상 그 위치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 섬유패션 산업의 주인으로 도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를 잘 이해해고 대응해야 한다. 이번 호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를 고찰해 보겠다.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키워드 ‘컨텍스트’

지난 호에 4차 산업혁명을 ‘엄마 기계’라고 정의를 내린 바 있다. 산업혁명 이전에 ‘엄마’가 자녀들의 체형, 선호도, 상태 등을 고려해서 옷을 만들 듯이, ‘엄마 기계’는 각종 기계, 시스템, 장치, 소프트웨어 같은 것들을 사용해서 고객이 원하는 맞춤옷을 만든다. 이와 같은 ‘엄마 기계’들이 섬유패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영역에서 등장하고 있다. ‘운전자 기계’는 무인자율주행차로 탑승자의 취향을 반영해 안락한 환경을 제공하며 원하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안내한다. ‘비서 기계’는 주인의 상황에 맞는 일정을 잡고 필요한 예약을 한다. ‘패션 쇼핑 도우미 기계’는 고객의 취향을 분석에 스타일링을 해주고, 구입할 옷을 추천해 준다. ‘디자이너 기계’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이용해 최근 유행하는 옷을 디자인 한다. ‘생산 관리자 기계’는 주문자의 특성을 파악해 스스로 원부자재를 선택하고, 공정을 최적화 한다.

이런 각종 ‘전문가 기계’들의 등장을 지켜보며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이들이 집중하는 것이 바로 ‘컨텍스트(context)’이다. ‘컨텍스트’는 4차 산업혁명을 연구하다 우연히 접한 단어였다. 정확한 쓰임을 접한 적이 없어 무척 생소하게 느껴지는 단어였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맥락, 의도, 전후좌우의 상황, 환경 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어학 분야에서는 ‘문맥’이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다음은 옥스퍼드 영한사전에 명시된 ‘Context’의 뜻이다.


Context의 사전적 의미

‘컨텍스트’라는 단어가 왜 갑자기 4차 산업혁명에 등장할까? 그동안 4차 산업혁명의 전문가로서 흔히 접해온 단어들은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 같은 말들이었다. 이런 용어들은 IT 융합 전공자로서 그리 낮선 것이 아니다. 그런데 ‘컨텍스트’는 그야말로 맥락 없이 등장한 단어였다. 신기술을 지칭하는 단어도 아니고, IT와도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 각종 자료를 접하고, 미국과 유럽에서 만났던 전문가들과 대화를 하고 있자니, 결론은 4차 산업혁명,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컨텍스트’였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 올 변화의 핵심은 지금의 불특정 다수를 위한 보편타당한 가치를 지향하던 것이 특정 수요자의 ‘컨텍스트’에 따른 차별화된 가치를 지향하는 것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Larry Page)는 3차 산업혁명이 절정이던 2009년 1월 ‘구글의 공동창업자가 전하는 성공의 비결’에서 “우리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것입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시점에 그의 메시지가 ‘컨텍스트’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2015년 구글의 파운더스 레터에서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합니다. 구글은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소비자들의 컨텍스트, 상황, 수요를 파악하여 적용할 것입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도 2011년 블룸버그(Bloomberg) 통신 보도에서 “그들의 데이터를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 지 정확하게 알려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는 ‘컨텍스트’를 파악하기 위한 개인의 데이터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주커버크(Mark Zuckerberg)도 마찬가지다. 2010년 10월 애링톤(Michael Arrington)과의 6분짜리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의 개인 정보 보호 정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프라이버시 시대는 끝났다.”

그들의 이러한 전략은 우리의 실생활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최근 필자의 친구가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페북이 내 휴대폰을 들여다보는가?” 그는 분명히 카카오톡과 네이버에서 여행지를 이야기하고 검색한 것뿐인데, 느닷없이 아무 상관도 없는 페이스북에서 그 여행지의 항공권과 숙박지 광고를 보내주었다고 놀라서 올린 글이다. 우리의 개인 데이터들은 그들에게 제공되고, 그들은 우리의 ‘컨텍스트’를 분석한 후 우리가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일들은 이제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콘텐츠가 왕이라면, 컨텍스트는 신이다

산업혁명 이전, 수요자 중심의 세상에서는 수요자의 ‘컨텍스트’는 가장 먼저 고려되는 항목이었다. 옷을 입어야할 고객과 옷을 만들어 줄 생산자의 ‘컨텍스트’가 파악되어야 최적의 소재가 결정되고, 디자인과 생산 공정이 진행된다. 이후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생산성 향상과 효율성 증대라는 유익을 가져다주었지만, 우리에게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었던 ‘컨텍스트’를 빼앗아 갔다. 개인은 대중으로 바뀌었고, 다양한 공정들은 표준 공정으로 바뀌었다. ‘컨텍스트’가 없는 세상에서 개인들의 취향, 선호 등은 고려되지 않는다. 3차례에 걸친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인류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일반적이고, 정적이며, 객관적이고, 절대적이며, 정해진 가치들을 추구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서는 이러한 추구가치들이 개인화, 동적인, 상황적인, 주관적인, 상대적인 가치들로 변화하여 추구하고 있다. 이들을 구분 짓는 것이 ‘컨텍스트’이다.

김치찌개를 예를 들어 이러한 변화를 살펴보자. 산업혁명 이후, 맛있고 값싼 김치찌개라는 것은 소비자 개개인의 취향보다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만족할 수 있도록 조리된 김치찌개이다. 그래서 이 김치찌개는 표준공정의 엄격한 관리 하에 맛이 개인별로 바뀌면 안 되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 ‘엄마 기계’는 나의 입맛을 알고,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만들어 준다. 두부를 좋아하고 매운 맛을 싫어하는 나를 위해 두부를 듬뿍 넣고 청량고추를 뺀 김치찌개를 끓여준다. 물론, 여기서 나의 입맛은 ‘컨텍스트’에 해당한다. 아무리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등의 첨단 기술을 사용해서 김치찌개를 만든다고 해도 내 입맛이 아닌 대중을 만족시키는 일반적인 맛이 된다면 그건 4차 산업혁명이 아니다. 내 입맛을 만족시키는 서비스라야 진짜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콘텐츠가 왕이라면, 컨텍스트는 신이다. 즉, 맛있는 김치찌개를 만드는 능력은 ‘왕(king)’이다. 그러나 개인 고객이 원하는 김치찌개를 알아서 끓여주는 능력은 ‘신(god)’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맛있는 김치찌개 집보다 내 입맛에 맞는 ‘단골 식당’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 맛있는 김치찌개도 ‘컨텍스트’가 개입되는 순간 좋은 것에 대한 기준도 바뀐다. 다들 값싸고 맛있는 김치찌개를 만들어 고객들에게 선보이려고 난리들이지만, 4차 산업혁명은 개인 고객들이 무슨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지 ‘컨텍스트’를 파악하는데 열을 올린다.

실제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등장한 섬유패션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좋은 소재, 값싸고 좋은 옷을 만들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데 혈안이 되어왔다. 기업들의 이런 노력으로 우리는 디자인이 뛰어나고 기능성이 우수한 제품을 손쉽게 구해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바뀌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고객의 ‘컨텍스트’를 고려하지 않은 채, 여전히 공급자 중심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소비자 수요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온갖 다양한 제품을 빠르게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해도 개인 고객별 취향이나 선호를 고려하지는 않으며, 고객의 개별 주문을 수용하지 않는다. 고객은 공급자가 미리 만들어놓은 수많은 기성복 중에서 맘에 드는 옷을 고르는 대중일 뿐이다. 오늘 날 기업들은 왕이 백성을 위하듯 고객을 대한다. 서로 경쟁적으로 백성인 고객들에게 온갖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선정을 베푸는 훌륭한 왕이 되려고 한다. “고객은 왕이다”를 외친들, 실제로는 기업이 왕인 것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오늘 날, ‘엄마 기계’로 무장한 기업들이 ‘컨텍스트’의 깃발을 높이 들고서 몰려오고 있다. 이들 기업은 고객을 진짜 왕으로 모신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세를 낮춰 왕이 아닌 신하의 위치를 지향하는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왕인 우리의 ‘컨텍스트’를 살핀다. 그다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 이들은 미리 만들어 놓고 우리에게 맞추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만들기 전에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묻는다. 왕이 만든 옷에 백성인 우리가 몸을 맞춰야하는 시대에서 왕인 우리의 몸에 신하가 옷을 맞춰주는 시대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컨텍스트’ 집중하는 새로운 혁신 기업 나와야

4차 산업혁명 시대, 왕을 자처하는 기업과 신하를 자처하는 기업의 혈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컨텍스트’를 고려하느냐 안하는냐의 차이가 정부군과 혁명군을 구분 짓는다. 승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고객을 왕으로 여기며 신하의 위치를 차지하려는 기업의 혁명군이 이길 것이다. 산업혁명은 늘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였다. 반복되는 혁명군의 승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동력으로 무장한 ‘기계’가 ‘사람’을 물리치고, 전기에너지로 무장한 ‘전기 기계’가 다시 ‘기계’를 넉넉히 물리쳤다. 이후 디지털로 무장한 ‘자동화/정보화 기계’는 ‘전기 기계’를 여유 있게 물리쳤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컨텍스트’를 고려하는 ‘엄마 기계’가 ‘컨텍스트’를 고려하지 않는 ‘자동화 기계’를 또 넉넉히 물리칠 것이다.

역사 속의 사례를 보면, 승자의 키워드는 엄청 복잡한 것들이 아니다. ‘동력’, ‘전기’, ‘디지털’ 같은 단순하지만 혁신적인 것들이 세상을 바꾸었다. 이제는 ‘컨텍스트’, 이 하나의 키워드가 세상을 바꾸고, 새로운 혁신적인 기업들을 탄생시킬 것이다. 실제 산업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육아와 교육, 건강, 음식, 보험, 여행 등 인류의 모든 영역에서 ‘컨텍스트’가 부활하고 있다. 아래 그림에 ‘컨텍스트’를 반영해 개인 고객별 맞춤 서비스를 하겠다는 기업들의 각종 구호를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 이런 ‘컨텍스트’의 구현은 대부분 인간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비스들이 곧 첨단기술과 접목되면 4차 산업혁명을 이루게 될 것이다.


컨텍스트를 반영한 맞춤형 산업 사례

이제 4차 산업혁명 시대, 한국의 섬유패션 기업들의 전략을 고민해 볼 차례다. ‘컨텍스트’를 고려하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 고객 혹은 거래처 그리고 내가 속한 기업의 ‘컨텍스트’를 파악하기 위해서 데이터를 모아야 한다. 이 데이터는 기존 정적인 정보와는 다르다. 철저하게 개인화되고, 동적이어야 하며, 상황에 따라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어야 한다. 일단 데이터가 모이면 수작업으로라도 ‘컨텍스트’를 파악할 수 있다.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같은 첨단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이후의 일이다.

미리 만들어 놓지 않고 우리에게 ‘컨텍스트’를 물어보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실제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작은 이와타서점(岩田書店)은 ‘일만엔선서(一万円選書)’라는 획기적인 서비스를 시작하여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주인이 고객에서 1만 엔어치 책을 선정해서 집으로 보내주는 서비스이다. 2007년에 시작된 이 서비스는 10년이 지난 현재는 1년 이상을 기다려야 겨우 책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야말로 고객의 ‘컨텍스트’를 파악하는 서비스이다. 2011년 창업하고 2017년 나스닥에 상장한 미국의 ‘스티치 픽스(Stitch Fix)’는 고객의 ‘컨텍스트’를 파악해 집으로 5벌씩 보내준다. 2010년 창업한 미국의 와비파커(Warby Paker) 역시 안경 분야의 스타트업으로 고객이 원하는 안경 5개를 집으로 보내주고 직접 써본 후 구매하게 하는 ‘HOME TRY-ON’ 서비스로 유니콘 기업이 되었다. 이렇듯 4차 산업혁명 시대, 새로 등장한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컨텍스트’에 집중한다. ‘컨텍스트’는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키워드이다.

또한 우리는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신하인 기업을 지향해야 한다. 미리 만들어놓고 선정을 베풀려는 훌륭한 왕은 사양하자. 좋은 소재, 우수한 성능, 아름다운 디자인, 합리적인 가격 등등 대중을 위한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은 이제 과거의 프레임이다. 이런 가치를 지향하는 한, 이미 자리 잡고 있는 글로벌 섬유패션 기업을 이기기가 힘들다. 우리는 ‘컨텍스트’에 집중하는 새로운 혁신 기업에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 그동안의 세계 섬유패션 산업의 조력자 위치를 넘어 주인으로 도약할 수 있다.
박우혁 기자(hyouk@kfashi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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