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한줄기 빛’…4차 산업혁명이 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이 가야할 길<1>
  패션 2020.01.2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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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규 건국대 화학공학부 교수/상허교양대학 학장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3D 프린터 등 전 산업에 걸쳐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빠르게 적용되면서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섬유패션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존의 시장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시기에 국내 섬유패션업체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건국대 박창규 교수의 ‘4차 산업혁명 시대, 한국의 섬유패션산업이 가야할 길’을 6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 현주소

전통 뿌리 산업으로서 우리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왔던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은 오늘날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선진국 바이어들이 원하는 제품을 OEM 방식으로 값싼 임금으로 우수하게 만들어 공급해왔던 소위 노동집약적 부가가치 창출형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사양 산업이 맞다. 이미 이런 분야의 업체들은 비용절감을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대부분 해외로 이전을 했거나 몇몇 국내에 남아있는 업체들은 일부분 자동화에 투자를 하거나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버티기에 전전 긍긍할 뿐이다. 해외에 대규모 투자를 해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부가가치를 창출을 시도하는 몇몇 업체나 업주들은 당분간 돈을 벌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을 재건하기에는 벅차 보인다. 그나마 손에 기름때를 묻혀가며 직접 산업 노하우를 쌓아왔던 창업 1세대가 지나가면 과연 그와 같은 기업들이 대부분 화이트칼라들인 다음 세대에서도 유지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가 활발히 진출하고 있는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도 계속 인건비가 오르고 있어 더 이상 매력적인 투자처도 아닌 실정이고, 그들도 우리처럼 결국에는 자국의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에티오피아 같은 아프리카가 좋은 투자처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도대체 언제까지 경쟁력 있는 곳을 찾아 나설 것인가? 아무리 찾아 나선들 결국은 시간적·물리적으로 한계에 다다를 것이 뻔하다. 결국 우리의 기존의 성공방정식은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방정식을 바꿔야 한다. 남들이 원하는 소재나 제품을 잘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것을 만들어 세계에 공급해야만 살 길이 있다.

패션 브랜드 분야로 범위를 좀 구체화 해보자. 대략 패션 브랜드 분야는 럭셔리 패션, 일반 패션의류, 스포츠·레저 의류, 패스트 패션 등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우리나라의 럭셔리 패션 분야는 MCM, 콜롬보(Colombo) 등 일부 해외 글로벌 브랜드를 인수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와 스토리를 전제로 한 럭셔리 패션 분야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은 그다지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은 듯 보인다. 연매출이 수십 조 원에 달하는 베네통(Benetton), 폴로(Polo) 같이 미국, 유럽이 지배하고 있는 글로벌 일반 패션의류 시장도 우리에게 큰 기회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브랜드 진입 장벽이 너무 커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서 이들을 넘어서기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나마 내국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토종 패션 브랜드들은 한국 땅을 떠나면 바로 인지도가 거의 없는 무명 브랜드로 전락된다. 그저 우리만의 리그이다. 스포츠·레저 의류 분야도 거의 유사하다. 한 동안 엄청난 더위와 추위 그리고 여가활동의 폭발적 증가 덕에 애슬레저(athleisure)다 패딩이다 뭐다 해서 스포츠·레저 의류 분야가 엄청 돈 잘 버는 아이템 되었지만 이 역시 찾잔 속에 태풍처럼 국내 시장에서 나눠 먹기식 경쟁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이나 동남아 정도를 빼면 우리의 글로벌 경쟁력은 거의 없다. 현재로서는 우리가 나이키(Nike), 아디다스(Adidas) 등을 상대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한 최근 SPA같은 패스트 패션이 블랙홀처럼 거의 모든 패션 산업의 대세가 되고 있다. 국내 대형 패션 브랜드 기업들이 너도나도 패스트 패션을 따라한다. 기업의 전략에 따라 더러는 성공하기도 하고, 처절히 실패하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된다. 성공은 언제나 좋은 것이지만, 이 역시 우리의 패션산업 자체의 경쟁력을 향상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절대적으로 커지는 것도 아니다. 정해진 내수 시장에 일부 주인들만 이리저리 바뀔 뿐이다.

동대문으로 대별되는 한국만의 봉제 산업도 예외는 아니어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세계 속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경쟁력을 갖추었던 과거의 소위 QRS(quick response system)은 온데간데없고, 거의 샘플이나 다품종 소규모 생산을 제외하고는 빠른 속도로 메인 오더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동대문 도·소매 시장은 중국산 제품들로 채워지고 있다. 아무리 우리가 애국심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를 외친다 해도 값싸고 품질 좋은 중국산 제품들을 자유 시장 경제체제에서 막을 방법이 없어 보인다. 아무리 영세 봉제업체들의 환경 개선을 하고, 앵커공장 등 자동화 장비나 공용 장비를 지원하고, 봉제 전문가를 양성하고, 제도적 지원을 하더라도 당장 어려움을 해소하고 버티는 기간을 연장할 수는 있겠지만 한계가 있다. 지금의 추세라면 동대문의 화려한 지난날을 재건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동대문 살리기는 국가적으로 매우 큰 난제일 수밖에 없다.

결국 획일적으로 모두에게 적용할 수는 없겠으나 언뜻 보면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에서 너도나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뭔가를 하는 듯 보이지만 대부분 기존의 성공 방정식을 고수한 채로 해외로 나가 연명하고 있거나, 국내에서 정해진 시장에서 서로 주인이 되고자 하는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 아닌 가 싶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업체들은 결국 자기 세대에서 서서히 잘 접을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막상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고 싶어도 기존 글로벌 공룡들이 떡 버티고 있으니 얼핏 봐서는 도무지 할 만한 아이템이 없다. 필자도 역시 전적으로 이에 동감한다. 기존의 아이템으로는 길이 없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본다면 이미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은 침몰하고 있는 배이다.


4차 산업혁명, 우리에게는 기회다

이런 비관적인 현실을 선뜻 받아들이기에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은 너무나 아쉽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투자를 해왔고, 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아왔다. “이제 어려우니 버리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덩치가 크다. 그동안 축적된 노하우도 너무나 많다. 그렇다고 침몰하는 배안에서 아무리 뚫린 구멍들을 때우고, 설비와 서비스를 개선한다 하더라도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이러한 노력들은 배의 침몰 속도를 늦추고, 좀 더 시간을 벌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인 해법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은 침몰하는 배에 머물지라도 몇몇은 일단 구명정을 타고 탈출해야 한다. 그리고 살아남아 침몰하는 배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새로운 배를 만들어 항해를 계속해야 한다. 이베리아 반도의 작은 나라였던 포르투갈은 엔리케 왕자의 탁월한 식견으로 좁은 영토를 뒤로하고 주인 없는 미지의 대서양을 향해 새로운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디뎠던 초기 미국인들도 주인 없는 금광을 향해 미지의 서부 개척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도전은 400년 만에 오늘 날의 미국을 일구었다. 이제 우리도 기존의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이라는 배를 과감히 버리고, 아직 주인 없는 미지의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세상이 이미 다 주인이 있는 안정된 상황이라면 우리에게 별로 새로운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세상이 요동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혁명은 세상의 주인을 바꾸는 것이 본질이다. 그러기에 필자는 4차 산업혁명이 우리에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절체절명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산업혁명 이후 2세기 가까이 유럽, 미국 등은 그동안 새로운 세상을 열고 주인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섬유패션 분야에서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기업들은 대부분 이들이다. 기계의 등장으로 인한 1차 산업혁명은 영국의 면방 산업을 필두로 공장을 갖춘 기업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유럽의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의 주인으로 등극했다. 주로 화학공학 기술을 기반으로 석유화합물로부터 생산하는 전기에너지 혁명으로 불리는 2차 산업혁명은 미국을 필두로 듀폰(DuPont) 같은 글로벌 화학섬유 기업과 베네통, 나이키, 폴로 같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 기업을 탄생시켰다. 디지털 혁명과 정보화로 대별되는 3차 산업혁명 역시 패션의 불모지였던 스페인의 자라(Zara), 인구가 1,000만 명도 안 되는 스웨덴의 H&M 같은 글로벌 패스트 패션 기업을 탄생시켰다. 패션 유통 측면에서 살펴보더라도 유사하다. 1차 산업혁명은 럭셔리 패션 브랜드 유통이라는 개념으로 로드샵과 백화점을 탄생시켰고, 2차 산업혁명은 섬유패션 제품의 대량생산을 필두로 브랜드 비즈니스를 본격화 하고 전문 유통매장과 대형 할인점을 만들어 냈다. 3차 산업혁명은 아마존(Amazon) 같은 온라인 쇼핑몰이라는 공룡들을 등장시켰다. 이렇듯 산업혁명은 매번 새로운 주인을 등장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기존 공룡들이 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 최고의 주인자리는 늘 새로운 개념으로 무장한 이들에게 내주어야만 했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 배를 띄우자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은 3차례에 걸친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이러한 글로벌 강자들의 틈바구니에서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공급해 오며 주인은 아니지만 서포터(supporter)로서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냈다. 우리가 서포터의 위치를 계속 수행할 수만 있다면 최상은 아니지만 결코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오늘날의 현실이 그들이 더 이상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서포터의 위치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포터를 계속 수행할 수 없다면 우리도 주인으로 변화하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섬유패션 분야에서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혁신적인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섬유패션 소비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이러한 위기일발의 시점에 다행히 주인이 바뀌는 4차 산업혁명이 오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섬유패션 분야에서 아직 주인은 없다. 미지의 세계이다. 다만 최근 들어 유럽의 대항해 시대처럼 수많은 출정식이 부쩍 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열정과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미지의 세상의 주인이 되고자 도전하고 있다. 우리도 전부는 아닐지라도 다만 몇몇이라도 이제는 여기에 합류해야 한다. 이제껏 가보지 않은 길, 한 번도 성공해 보지 않은 방정식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이 그동안 쌓아왔던 기존의 아이템과 기술, 그리고 내수시장 만으로 재도약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4차 산업혁명은 그동안의 섬유패션 산업의 지형을 순식간에 맹렬히 바꾸고 있는 중이다. 사실 지난 매번의 산업혁명들도 당시에는 그래왔다. 집집마다 사람이 만들던 옷을 기계가 만드는 것이 얼마나 생소한 개념이었겠는가? 게다가 똑같은 옷을 대량으로 만들어 브랜드란 이름으로 무장한 기성복이 판치는 세상은 얼마나 낯설었겠는가? S/S, F/W로 단순이원화 했던 섬유패션 시즌을 매 주마다 신상품을 출시하겠다는 패스트 패션의 신개념은 당시에는 패션의 기본 상식도 없는 개념이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또한 지금 일반화 되어있는 기존의 섬유패션의 개념을 통째로 바꿀 것이다. 빅데이터로 고객이 원하는 옷을 알아내고, 인공지능으로 디자인 한 옷이 만들어 질 것이다. 스마트 의류는 내 상태를 알아보고 수시로 최적의 조건들을 제공할 것이다. 판매-구매 위주의 상거래 방식은 대여-공유로 확장될 것이다. 옷을 파일로 다운받아 3D 프린터로 제작하는 방식도 등장할 지도 모른다. 일회성 옷이 등장해서 편의점 혹은 자판기에서 옷을 구매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핸드폰에서 옷을 가상으로 입어보고 만져보고 구매하게 될 것이다. 옷은 필요하면 의약품이나 비상식량으로도 변신할 수 있게 될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섬유패션은 지금까지의 섬유패션의 고정 관념 속에 있지 않다. 이런 상상속의 일들이 실제 일어나고 곧 새로운 주인들이 등장할 것이다. 우리도 이중 한두 개는 가져야 한다. 우리가 안한다고 다른 이들도 안할 것이라는 생각은 절대 금물이다,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눈을 감고 “태양은 없다”라고 한들 태양이 없는 게 아니다.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의 현실을 정말 잘 묘사하는 수서양단(首鼠兩端)이라는 한자 성어가 있다. “구멍 속에서 목을 내민 쥐가 나갈까 말까 망설인다”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구멍 안으로 먹이를 넣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열심히 하면 더 많은 먹이를 주곤 했다. 배불리 먹고 사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먹이를 넣어주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우리 구멍을 떠나기 시작했다. 구멍 속 곳간에 쌓아둔 먹이가 있긴 하지만 구멍 속에서 아무리 우리끼리 치고 싸워봤자 결국 먹을 것은 떨어질 것이다. 그야말로 수서양단의 시국이다. 새로운 먹이를 찾아 굴 밖으로 나가야 살 길이 있다. 굴 밖에는 쥐의 목숨을 위협하는 고양이도 있고 쥐도 있겠지만 어차피 나갈 바에는 하루라도 빨리 나가야 한다. 안전한 굴 밖 세상을 이리저리 확인한 후에는 나가봐야 먹을 것은 거의 남겨져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동안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좋은 범선을 만드는 기술이 있다. 이제 이 범선으로 미지의 대륙 발견을 위해 배를 띄울 차례이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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