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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사천왕사는 낭산 남쪽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낭산은 선덕여왕릉과 신문왕릉, 사천왕사 등의 사적지와 국보 황복사지삼층석탑, 보물 중생사지마애삼존불, 기념물 문무왕탑지 등의 문화유산이 다양하게 포진하고 있다. 특히 사천왕사와 중생사는 다양한 신화와 전설 같은 설화들이 전하고 있다. 사천왕사에는 당나라 50만 대군을 물리친 문두루비법을 시전한 이야기가 호국사찰의 의미와 함께 전하고 있다. 또 전설의 양지스님이 조각한 신장상이 완전한 모습으로 손오공게임 되살아나 서탑의 기초로 복원되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천왕사 남쪽 부지에서 문무왕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조각과 함께 비석의 받침 귀부가 두 기나 출토돼 눈길을 끌고 있다. 사천왕사와 망덕사 이야기는 전설 같지만 그 흔적이 뚜렷이 남아 역사가 되고 있다. 신천지릴게임 사천왕사지 남쪽에 남아 있는 문무왕비석의 귀부. 강시일 기자 ◆신화전설 : 문두루비법 신라가 당나라 군사의 힘을 빌어 백제에 이어 고구려까지 정벌했다. 이때 당나라 유격병과 장병들이 주둔지에 머물면서 신라 군사를 습격하려 했다. 문무 바다신릴게임 왕이 이를 깨닫고 김유신 장군을 앞세워 당나라 군사를 무찔렀다. 김유신 장군이 꾀를 내어 당나라 명장 소정방이 이끄는 대군을 상주와 문경 접경지에서 몰살시키면서 흐른 적군의 피가 내를 이루어 맷돌이 둥둥 떠다녔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하고 있다. 그곳이 당교라 전하며 지금도 문경시청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단순한 전설이 아닌 역사적인 야마토게임방법 사실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 이듬해 화가 치민 당나라 고종이 사람을 시켜 숙위 중이던 문무왕의 동생 인문 등을 불러 "너희들이 우리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를 멸하였거늘 어찌하여 우리 군사를 해치는가"라며 심하게 꾸짖었다. 그리고 인문을 즉시 감옥에 가두고 군사 50만 대군을 훈련시켜 설방을 장수로 삼아 신라를 치려고 했다. 야마토게임방법 이때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불법을 공부하러 갔다가 인문을 찾아뵙자 인문이 이 사실을 그에게 알려 주었다. 의상이 즉시 귀국해 이것을 문무왕에게 보고하니 왕이 이를 매우 염려하여 여러 신하들을 모아 놓고 방어할 계책을 물었다. 사천왕사지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가설했다는 남부선 폐철길. 강시일 기자 궁리에 골몰하는 가운데 각간 김천존이 조심스럽게 나와 "근래에 명랑법사가 용궁에 들어가 비법을 전수받아 왔으니 그를 불러 물어보시면 답을 얻을 것 같습니다"라고 고했다. 왕은 즉시 명랑법사를 궁으로 모시라고 명했다. 명랑이 궁으로 들어와 "낭산의 남쪽에 신유림이 있습니다. 그곳에 사천왕사를 짓고 도량을 개설하면 능히 적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왕은 즉시 사천왕사를 지으라고 명했다. 이때 정주에서 사람이 달려와 "수많은 당나라 군사들이 우리나라 국경까지 와서 바다 위를 돌고 있사옵니다"라고 보고했다. 왕이 명랑을 불러 말하기를 "일이 급하게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라고 물었다. 명랑이 "여러 가지 무늬가 있는 비단으로써 임시로 절을 지으면 됩니다"라고 보고했다. 이어 왕의 명을 받은 명랑법사는 무늬 있는 비단으로 절을 꾸미고, 풀로 오방신상을 만들어 세웠다. 유가에 밝은 12명의 승려들과 함께 문두루비법을 시전했다. 법사는 비단을 꾸민 절 안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명승들과 함께 주야로 진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당나라의 군사와 신라의 군사가 아직 싸움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바람과 물결이 사납게 일어나 당나라 배가 모두 침몰했다. 당나라 50만 대군 가운데 살아서 돌아간 병사는 하나도 없었다. 왕은 후에 절을 다시 고쳐 짓고 사천왕사라고 했다. 최근 복원한 사천왕사지의 서탑 기단에 신장상이 조각돼 있다. 강시일 기자 그후에 당나라가 다시 조헌을 장수로 임명하여 역시 5만의 병사로 쳐들어왔다. 신라는 또 다시 그 문두루비법을 시전했다. 당나라 배들은 전과 같이 침몰해 모두 바다 귀신이 되었다. 이 당시 한림랑 박문준이 인문을 따라 당나라에 갔다가 감옥에 함께 갇혀 있었는데, 당나라 고종이 문준을 불러 "두 번이나 큰 군사들을 일으켰건만 살아서 돌아온 자가 없는데 너희 나라는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가"라고 물었다. 문준이 꿇어엎드려 "저희 신하들이 당나라에 온 지 10여 년이 되었으므로 본국의 일은 알지 못하옵고 다만 멀리서 한 가지 소식을 들었을 뿐이옵니다"라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씀 드렸다. 이어 "우리나라가 상국의 은혜를 두텁게 입어 삼국을 통일하였기 때문에 그 은덕을 갚으려고 낭산의 남쪽에 사천왕사를 지어 황제의 만수를 빌기 위해 오랫동안 법등을 잇고 있다는 것뿐이옵니다"라고 했다. 고종이 이를 듣고 크게 기뻐하며 즉시 예수시랑 악붕귀를 사신으로 보내 그 절을 살펴보게 했다. 문무왕은 당나라 사신이 온다는 것을 미리 듣고 이 절을 보여서는 안되리라 여겨 즉시 별도로 그 남쪽에 새로운 절을 지어 놓고 사신을 기다렸다. 사신이 신라를 방문해 "먼저 황제의 만수를 비는 사천왕사에서 꼭 분향을 하겠다"라고 고집했다. 신라 왕실에서 곧 새로 지은 절로 인도하여 보였더니 그 사신이 절에는 들어가려 하지도 않고 문 앞에서 "이 절은 사천왕사가 아니라 바로 망덕요산의 절이다"하고는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신라의 관리들이 사신을 극진히 대접하고, 금 1천냥을 주면서 망덕사가 곧 사천왕사라고 설득했다. 그 사신이 당나라로 돌아가 황제에게 "신라에서 천왕사를 지어 황제의 만수무강을 절에서 빌고 있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사천왕사지 금당지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풍경. 멀리 망덕사가 보인다. 강시일 기자 ◆신화전설 2: 명랑법사 금광사본기는 명랑법사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게 나타나고 있다. 법사의 이름은 명랑이고 자는 국육이며 신라에서 벼슬이 사간인 재량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남간부인으로 법승랑이라고도 하는데 벼슬이 소판인 무림의 딸 김씨이다. 바로 자장의 누이동생이다. 재량은 아들 셋이 있으니 맏아들은 국교대덕이고 그 다음이 의안대덕이며 명랑법사가 막내아들이다. 처음에 명랑의 어머니가 푸른색 구슬을 삼키는 꿈을 꾸고 아이를 갖게 되었다. 신라의 명랑법사는 당나라로 건너가 불도를 배웠다. 선덕왕 원년인 632년에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을미년인 635년에 돌아왔다. 법사는 신라로 돌아오는 길에 바다 용의 요청으로 용궁에 들어가 비법을 전하고 황금 천 냥을 시주받아 땅 밑으로 잠행하여 남간마을 자기 집 우물 밑에서 솟아 나왔다. 그리고 집을 희사하여 절을 만들고 용왕이 시주한 황금으로 탑과 불상을 꾸미니 번쩍이는 광채가 빼어나게 특이해서 사람들이 절 이름을 금광사라고 불렀다. 총장 원년 무진년인 668년에 당나라 장수 이적이 대군을 거느리고 신라군과 합세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그 후에 남은 군사가 백제에 머물면서 장차 신라를 습격하여 멸망시키려 하는 것을 신라 사람들이 알고 군사를 내어 이를 막았다. 고종이 이를 듣고 크게 화가 나서 설방에게 명하여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치려고 하였다. 사천왕사지의 서탑 기초석. 강시일 기자 문무왕이 이것을 듣고 두려워하여 법사를 청해 비법을 써서 이를 물리치게 했다. 이로 인해서 명랑법사는 신인종의 시조가 되었다. 고려 태조가 나라를 세울 즈음에 또한 해적이 나타나 소란을 피우므로 즉시 안해와 낭융의 후예인 광학과 대연 두 큰스님을 청해 비법으로 빌어서 진압하니 모두 명랑법사의 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또 신라 서울 동남쪽 20여리 되는 곳에 원원사가 있었다. 이는 안해 등 네분의 큰스님이 김유신, 김의원, 김술종 등과 함께 동해에서 신라로 침범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발원하여 세운 것이다. 네 분의 큰스님은 모두 명랑법사의 제자들이다. 그들의 유골도 모두 원원사 동쪽 봉우리에 묻혔다. 그래서 사령산 조사암이라고 부른다. 인공지능 AI가 그린 신라시대 명랑법사가 문두루비법을 시전하는 상상도. ◆신화전설 3: 지팡이로 시주하는 양지스님 승려 양지의 조상과 고향에 대한 기록은 자세히 전하지 않아 알 수 없다. 다만 신라 선덕여왕 대에 그의 행적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양지 스님은 지팡이 머리에 포대 하나를 걸어 놓으면 지팡이가 저절로 시주하는 집으로 날아가 흔들거리며 소리를 내었다. 그 집에서 이를 알고 재에 쓸 비용을 넣어주었고 포대가 차면 날아서 되돌아온다. 이 때문에 그가 머물고 있던 절을 석장사라고 이름했다. 그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신비스런 행적이 모두 이와 같았으며, 여러 가지 기예에도 두루 능통하여 신묘함이 비할 데가 없었다. 글씨와 그림을 잘 그려 영묘사의 장륙존상과 천왕상, 아울러 전각과 탑의 기와와 사천왕사 탑 아래의 신장상과 법림사의 주불삼존 및 좌우 금강신 등이 모두 양지가 만든 것이다. 영묘사와 법림사 두 절의 현판을 썼고, 또 일찍이 벽돌을 다듬어 작은 탑 하나를 만들고, 아울러 부처 3천 불을 조각하여 그 탑 안에 안치하고 그 탑을 절 가운데 모시고 예를 올렸다. 최근 복원한 사천왕사지 기단 전경. 강시일 기자 그가 영묘사의 장륙삼존을 만들 때 스스로 선정에 들어가 삼매에서 뵌 부처를 모형으로 하였다. 그래서 온 성안의 남녀들이 다투어 진흙을 나르면서 풍요를 불러 지금까지 향가로 전하기도 한다. 양지가 제작한 것으로 전하는 사천왕사의 천왕상 조각은 발굴 과정에서 출토되어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경주유산연구소가 보관하고 있다가 협업해 100년 만에 퍼즐을 맞춰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이 글은 문화콘텐츠 육성을 위해 스토리텔링 한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