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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게임끝판왕 바로가기 go !!제주의 진가는 멋진 관광지에만 있지 않다. 중산간부터 바닷가까지 긴 세월에 걸쳐 주민들이 뿌리 내리며 살고 있는 곳, 바로 마을에서 더욱 멋진 제주를 만날 수 있다. 심규호 중국학회회장이 신발 끈을 질끈 묶고 제주 마을로 향한다. 심규호 회장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마을 이야기를 [제주의소리]를 통해 만나보자. [편집자 주]
'핫플' 월정리 월정리는 석영질 모래가 아니라 산호나 조개껍질 등이 잘게 부서지며 만들어진 반월형의 모래 해안을 끼고 있다. 청정한 바다와 얕은 수심의 흰 모래, 그리고 식물 플랑크톤의 농도가 높기에 월정리 바다는 에메랄드 색깔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체리마스터모바일 . 사실 제주의 바다가 대부분 그렇기는 하지만. 월정리 해안가에 아기자기한 카페며 상가가 들어서면서 언제나 외지에 온 이들로 북적거린다. 2000년 이후 용천동굴(466호, 2006년 지정)과 당처물동굴(천연기념물 384호, 1996년 지정)이 발견되면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마을로 지정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밭담을 지닌 까닭도 있을 터 바다이야기 이다. 바닷가를 관광객에게 내주면서 마을 사람들은 오랜 세월 삶의 터전인 바다를 잃고 말았다. 그런 까닭인지 지금은 어로보다는 마늘, 당근, 쪽파 농사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한다. 멜과 함께 사라진 것들 구좌읍은 멸치잡이로 유명한 지역이다. 특히 월정리는 일제강점기부터 제주 최대의 멸치어장으로 유명했다. "멜 잘 들민 오션릴게임 월정, 멜 안들민 멀쩡", "물 반, 멜 반"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멸치잡이가 유명했다.(『구좌읍 역사문화지』, 제4장 민속문화유산, 581쪽) 1910~20년대에 지금의 월정포구 인근에 멸치가공공장이 있어 가공멸치를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다고 하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멸치잡이 어선이 제주 근해에서 대량으로 멸치를 잡아대니 어찌 "멜 들었저" 소리를 들 릴박스 을 수 있겠는가? 구좌읍 서쪽 조천읍 함덕리 역시 멸치잡이로 유명한 곳이어서 멜 풍년을 기원하는 서우제당이 있는데, 월정리에도 멸치 수확을 기원하는 제의로 그물코ᄉᆞ가 있다. 사실 그물고사는 멸치잡이를 하는 해안마을이면 어느 곳이나 있을 정도로 많은데 보통 3년에 한 번씩 음력 3월 15일에 거행합니다. 원래는 굿인지라 심방이 주도하지만 야마토게임하기 제물을 준비하고 기원을 올리는 이들은 멸치잡이를 하는 어부나 해녀, 마을사람들이다. 나중에는 유교식 제의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멸치가 몰려오지 않으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제주에는 육지의 계契와 유사한 접接이 있다. 쌀접, 그릇접, 검질접(김매기접), 화단접(상여접), 돼지접, 갑장접, 장막접, 산담접, 방아접, 멜 그물접 등이 그것이다. 멜 그물접은 말 그대로 멸치는 잡는 그물을 공동소유하고 함께 협업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일종의 품앗이인데, 자원이 부족하고 노동력 또한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제주민의 지혜와 노력의 소산이다. 제주의 독특한 협업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수눌음은 바로 이러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제주 고유의 정신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월정리 사람들은 1912년 제주에서 가장 먼저 어업조합을 만들 정도로 공동체 협업이 활성화되었다. 그런 까닭인지 원래 자연마을이 동동, 중동, 서동 등이 있으나, 마을 주민이 여섯 개의 조합에 속해 있기 때문에 1조합부터 6조합까지 구분해서 불렀다. 마을은 방위에 따라 동, 서, 중으로 나뉘지만 그 안에 독특하고 예쁜 마을 이름이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섯동네라고 부르는 서동에는 월정리 농협 서쪽과 서북쪽에 형성된 마을인데, 그 안에 코짓가름, 모살가름, 새가름, 베롱갯동네가 있다. 새가름의 가름은 표준어인 '뜸(한 동네에 몇 집씩 따로 모여 있는 구역)'이나 마을이란 제주어이니, 새로 형성된 동네라는 뜻이고, 코짓가름은 코지(곶串), 즉 바다 쪽으로 길고 좁게 내민 땅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베롱개는 '베롱하다'에서 나온 말로 '눈이 약간 트이다'라는 뜻이다. 어느 시인의 시에 "지금 대명천지 훌훌 자물쇠 벗기는 베롱한 세상"이란 시구가 나오는데, 아직 어둡지만 그래도 약간은 빛이 들어온다는 뜻일 터이다. 이렇듯 베롱개는 바다에서 보면 보일 듯 말 듯 작은 개라는 데서 붙여졌다. 베롱개에 돌담을 경계로 오른쪽은 해신당, 왼쪽은 포제단이 있다. 설촌 내력 『구좌읍 역사문화지』에 나오는 월정리 설촌 유래를 보면, 김해 김씨에 의한 설촌설, 무주연대와 관련된 설촌설 등이 나온다. 지금은 해안도로를 개설하면서 매립된 베롱개(飛龍浦)에 '새물'이란 용천수가 나오고, 서쪽에 둔덕이 있어 겨울철 서북풍을 막아주기 때문에 김해 김씨 일가가 그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무주연대설은 무주, 즉 지금의 월정리에 연대煙臺가 있었기 때문에 연대를 지키는 별장別將이나 연군煙軍이 식구들과 함께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독특한 점은 월정리 본향당 본풀이에 나오는 설촌 연대이다. "웃당 신산국 삼대왕님, 이 ᄆᆞ을 개판ᄒᆞ난 본당으로 모샀수다. 옛날 고려 때에 이 ᄆᆞ을을 개판ᄒᆞ고, 인간서립 ᄒᆞ난, 서당머체에 좌정ᄒᆞ고, 땅 ᄎᆞ지 물 ᄌᆞ지ᄒᆞᆫ 토지관이우다. 옛날 대국서 내ᄒᆞ여 온 알당 서당할망 황토부인광 신산국 삼대왕은 부배간이 ᄒᆞᆫ디 좌정ᄒᆞ고 위로ᄒᆞᆸ네다."(월정리 5조합에 거주했던 여자 심방 임신백(65세). 제주민속박물관을 운영했던 진성기 관장 채록) 월정리 본향당 - 오른쪽은 신산국 노태웃도, 왼쪽은 서당할망 황토부인을 모심. 본풀이에 나오는 것처럼 월정리 본향당은 서당머체 큰당이라고 하는데 월정리 182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부부가 한 곳에 좌정하고 있다고 하였으나 남편인 신산국 노태웃도(신산국 삼대왕 적선복 시도령 ᄌᆞ부금 노태웃도)는 큰당에 모시고, 여신인 서당할망 황토부인은 남쪽 물색이 걸린 동백나무에 모셨다. 부부를 따로 모신 부부별좌 형태이다. '서당할망 황토부인'은 사신蛇神이다. 제주에서 사신은 주로 여계 세습으로 여성과 관련이 있는데,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꺼리지만 재복과 관련이 있어 제대로 섬기지 않으면 재앙이 있다고 한다. 서당할망은 임신했을 때 돼지털을 그을린 냄새를 맡았기 때문에 사냥을 하던 신산국 노태웃도의 노여움을 사서 따로 좌정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았는가? 본향당 본풀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고려시대부터 월정리에 사람들이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연대는 세종대에 설치되었고, 김해김씨가 월정리에 정주한 것도 대략 4백 년 전이니 조선시대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점이 있다. 바로 월정리 용천동굴에서 대략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토기나 쇳조각 등이 발견되어 고려 이전에 이미 용천동굴 주변에 사람이 살았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월정리 바닷가에서 조개무지가 발견되기도 했으니 적은 숫자이긴 하나 사람이 거주했던 것은 기원전의 일이 아닌가싶다. 용천동굴 구좌읍은 동굴이 많다. 용천동굴은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가운데 제1동굴계에 속한다. 거문오름부터 당처물동굴까지 약 14.6㎞에 걸쳐 거의 직선적으로 형성된 용암동굴군 내에 북오름굴, 대림동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이 이어져 있다. 지도를 보면, 남쪽에서 북쪽으로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로 이어진다. 월정리 용천동굴. 만장굴과 김녕굴은 김녕리,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은 월정리에 속하지만, 똑같이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이다. 용천동굴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 가운데 하나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이다. 하나는 용암동굴이면서 석회동굴에서만 볼 수 있는 종유관, 종유석, 석순, 석주, 동굴산호, 동굴진주 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종유석은 지상의 나무가 뿌리를 내려 그 위로 탄산칼슘이 덮여지면서 만들어진 것이니 지상의 나무가 지하에서 돌로 변한 셈이다. 두 번째는 길이 2960m, 폭은 7~15, 높이는 1.5~20m로 비교적 길고 넓다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동굴 안에 용천龍泉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수심 12m에 이르는 큰 호수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이 승천하기 전에 잠룡으로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토기류나 동물의 뼈, 철기, 목탄 등이 발견되어 대략 1천여 년 전에 주변인들이 이곳에서 제를 지낸 흔적으로 알려졌다. 용천동굴은 2005년 전신주 공사를 하다 발견되었는데, 그 이전에 사람들은 이미 그 동굴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머들이네 가족 심재 김석익金錫翼의 『탐라지』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동문선東文鑑』에 '제주 땅에 돌이 많고 본래 논은 없다. 오직 보리, 조, 콩만이 생산된다. 그 땅은 예전부터 경계가 없어 힘센 집안들이 날마다 잠식하여 백성들이 괴로워했다. 김구金坵가 판관이 되었을 때 백성들의 괴로움을 물었고, 돌을 모아 담을 쌓아 경계로 삼아, 많은 백성들이 편하게 생각하였다.'라고 하였다."(『심재집』3, 「탐라지耽羅誌」) 월정리 진빌레 밭담길. 그렇다면 제주 밭담은 고종 시절에 나온 셈이다. 하지만 이외에 축담이나 올렛담, 잣담, 산담 등은 그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 제주의 밭담은 밭과 밭의 경계를 나타내는 것이기 이전에 밭에서 나온 돌무더기를 쌓아 놓은 것이니 밭일의 또 다른 결과인 셈이다. 월정리 밭담길의 캐릭터는 '머들이네 가족'이다. 머들은 제주어로 '돌무더기'라는 뜻이니 탁월한 선택이다. 제주의 모든 밭담을 이으면 약 2만 2천km, 끝없이 이어진 검은 돌담이 마치 흑룡과 같다고 하여 '흑룡만리'라는 말도 쓴다고 하는데, 어찌 만 리로 그간의 노고를 갈음할 수 있겠는가. 제주 밭담은 2014년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제주에는 성산읍 신풍리 어멍아방 밭담길, 난산리 난미 밭담길, 애월읍 수산리 물메 밭담길, 어음리 공세미 밭담길, 한림읍 동명리 수류촌 밭담길, 귀덕리 영등할망 밭담길 등등 예쁜 밭담길에 참 많다. 월정리 밭담길 또한 매우 귀하고 예쁜 밭담길이다.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별꼴학교 이사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 |